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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육아일기

아내의 회식 _ 육아일기 (D + 1077일, D + 452일)

by 토리오빠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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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아내의 회식이 있는 날이다. 아내가 복직한 후 첫 회식을 할 때는 혼자서 아이들을 재울 생각에 긴장을 좀 했었는데 두 번째가 되니 좀 힘들겠지만 그냥 하면 되지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프로 아빠가 된 기분이랄까. 그만큼 혼자하는 육아가 익숙해졌다. 

 

 평소처럼 아이들을 하원을 시키고 저녁을 먹였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고기 수육. 비교적 저렴한 앞다리살로 골라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잘 먹어 다행이었다. 특히 둘째가 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수육을 흡입해서 뿌듯함을 느꼈다.

 

 저녁먹은 걸 정리하니 시간이 훌쩍 간다. 중간중간 심심하다고 놀아달라는 민원이 계속 발생했지만 "이것만 치우고 놀아줄게, 이것만 정리하고 책 읽어줄게."라고 이야기하며 할 일을 하나씩 해치웠다. 맘껏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 코가 석자다. 청소기는 못 돌리더라도 저녁 먹은 건 치워야 하니 말이다.

 

 둘째를 씼길 준비를 하며 첫째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다. "첫째야 오늘은 엄마 회사 회식이라 늦게 오니까 기다리더라도 방 안에서 누워서 기다리는 거야. 알겠지?" 아침부터 여러 번 이야기를 들은 첫째는 알겠다고 이야기하며 웃으며 뛰어다닌다. 정말 알아들은 건지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든다. 첫째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떼쓰면 안 되는데. 그럼 첫째 컨디션도 망가지고 둘째도 잠들지 못해 아이들을 재우는 난이도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길 기도하며 서둘러 자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첫째, 둘째 그리고 나. 세명이 나란히 침실에 누웠다. 첫째는 현관 앞으로 가겠다며 잠시 떼를 썼지만 아까 약속하지 않았냐며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하니 곧 잠잠해졌다. 둘째는 졸렸는지 금방 잠들었다. 첫째는 무슨 할 말이 많은지 계속 조잘조잘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아빠 졸려서 자야 한다고 하니 몇 번 말을 걸다 잠잠해진다. 한참이 지나고 아이들의 숨소리가 안정되자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왔다.

 

 아내는 내게 아이들이 잘 잠들었냐는 카톡을 보냈다. 9시쯤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재웠다는 답을 하고 쇼파에 벌렁 누웠다. 원랜 재테크 공부를 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술을 먹고 있으니 나도 맥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치킨을 시킬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키지 않고 샤워를 했다.

 

 샤워가 끝난 후 공부하기 싫어 밍기적 대고 있는데 다시 아내의 카톡이 온다.

 

 "애들은 잘 재웠어?"

 

 ???

 

 아까 재웠냐고 물어봤는데. 이건 아내가 취했다는 신호다. 아까 아내가 보냈던 카톡의 오타도 신경 쓰인다. 애들 재웠다는 카톡을 보고 안심하고 맘 놓고 퍼마시나 보다. 슬쩍 부아가 치민다. 에라 모르겠다 치킨과 맥주를 시킨 뒤 아내에게 취한 거 같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했다. 회식도 회사일의 연장이니 당연히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애들 잘 잔다고 술 먹다 꽐라가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집에서 애들 보면서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단축근무한다고 회사에서 욕먹어가며 칼같이 퇴근했던 내가 미련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서운했다.

 

 아내에게 '나는 집에 가야한다.' 이것 하나만 생각하라고 연락했지만 치맥을 다 먹도록 감감무소식이다. 12시가 다 돼 가는 시간. 이젠 화가 난다. 전화를 거니 아내가 느릿느릿하게 취한 목소리로 받는다. 취한 것 같으니 빨리 집에 오라고 이야기했지만 오겠다는 말은 없다. 자리가 끝나야 올 모양이다. 회식하는 곳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데 왜 이렇게 집에 오기가 힘든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둘째가 운다. 다시 첫째와 둘째 사이에 누워 아이들을 재운다. 한참을 재우다 살짝 잠들었을 때 아내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울컥하는 마음.

 

 아내가 씼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이대로 애들 옆에서 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벌컥 방문이 열린다. 애들이 깰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 나머지 한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엔 플래시가 켜져 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핸드폰 플래시 끄고 가서 자!"

 

 화는 나지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애들 옆에서 잘게."

 

 술 먹고 왔으면 그냥 곱게 침대에서 자면 되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핸드폰 플래시는 끄지도 않고 굳이 여기서 실랑이를 벌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들이 깨서 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시 최대한 작게 소리친다.

 

 "얼른 나가! 내가 재우고 있잖아! 그냥 나가라고!"

 

 아내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갔고. 난 속이 터질 듯이 화가 났다. 이걸 어찌해야 하니.

 

 아이들의 숨소리가 안정되자 안방에 가서 자려고 했는데, 아내가 계속 토할 것 같은 소리를 낸다. 옆에 누워있는데 그 소리가 왜 이렇게 듣기 싫은지. 안방문을 닫고 거실서 잠을 청했다. 화가 났지만 혼자서 삭히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결국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소파에서 자서 찌뿌둥한 기분. 그래도 자고 나니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가셔서 별로 화가 나진 않았다. 아내는 취한 건 맞지만 기억은 다 난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제 안방 침대서 토할 것 같은 소리 낸 건 기억나냐니까 그건 기억 안 난다고 한다

 

후...

 

 화난 감정도 다 가셨고 그냥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넘기기로 했다. 아네는 내 표정이 풀린 걸 보더니 잔소리 듣기 전에 출근해야겠다며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서둘러 현관을 나선다.

 

 새까맣게 탄 내 마음을 알기는 하는지.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해. 휴직한 아빠는 아이들 등원시킬 준비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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