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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육아일기

아내의 복직 _ 육아일기 (D + 1048일, D + 423일)

by 토리오빠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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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복직을 한 후 일주일이 지났다.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낀 한 주였다. 첫날부터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휴직을 하고나선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깨기 전에 준비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알람소리에 일어났다. 아내는 훨씬 더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 둘을 돌보며 씻기는 어렵기에 먼저 샤워를 하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식기세척기에 있는 식기를 정리하고 첫째 등원가방을 준비하고, 아침간식을 만드니 아이들이 일어났다. 아내 역시 일찍부터 준비했기에 여유가 좀 있었다. 평소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는 8시쯤 출근했다. 인사를 하고 나니 첫째가 운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첫째를 달래며 둘째를 돌봤다. 이 정도는 예상했었던 어려움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래며 기다리니 첫째의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등원 준비를 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워 좀 걱정했지만 무사히 어린이집에 도착. 둘째를 안고 집에 돌아와 집안정리를 하니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할만한데?'

 

 평소 루틴에 맞춰 둘째를 재우고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 낮잠을 재웠다. 슬슬 저녁 준비를 해볼까 생각하는 사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첫째가 열이 39도가 넘는다고 말이다. 감기 기운이 있길래 병원에 사람이 많은 월요일 말고 내일 진료를 보게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급해졌다. 간단히 저녁준비를 마저 하고 쌍둥이 유모차에 둘째를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첫째는 눈이 퀭했다. 열이 나니 당연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유모차에 태우려는데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운다. 난감하다. 걸어서 병원을 가는 건 너무 오래 걸린다. 내가 가자는 대로 첫째가 따라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날씨도 추워 마음이 조급해진다. 할 수 없이 젤리로 꼬셔서 병원에 갔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에 온건 처음이었기에 진료실에 들어갈때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첫째가 진료볼 동안 둘째를 어디다 둬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도 불안하고 신발도 가져오지 않아 둘째를 진료의자 옆에 두는 건 포기했다. 돌이 갓 지나 아직 어린 둘째가 계속 잘 서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쌍둥이 유모차를 가져왔기에 진료실에 가지고 들어가기도 부피가 너무 크다. 결국 둘째를 아기띠로 업고 첫째를 안고 진료를 보기로 했다. 의료용 카메라로 콧속을 살펴보기 위해 안고 있던 첫째의 손을 꽉 잡고 있는데 간호사가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휴지를 두어 장 뽑아준다. 평소에 간단히 진료만 보던 의사 선생님도 자기도 아들 둘 키울 때 힘들었다며 고생한다고 위로해 줬다. 하지만 진료결과는 마음이 무거웠다. 첫째는 코가 꽉 막히고 목이 부은 심한 감기, 둘째는 감기에 중이염까지 있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고 집에 오니 긴장이 탁 풀린다. 첫째가 오는 길에 화장실에 가자고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밖에서 첫째를 화장실에 앉히려면 또 둘째를 업어야하는데 겨울이라 외투가 많아 번거로울게 뻔했기 때문이다. 얼굴이 퀭한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저녁을 먹였다. 조개관자와 버섯을 버터에 구워줬는데 먹는 둥 마는 둥이다. 결국 김에 싸서 밥을 먹이고 나서 약을 먹였다. 원랜 아내와 한 명씩 먹였는데 혼자 먹이려니 하세월이다. 도망 다니던 첫째를 붙잡아 억지로 약을 먹였다. 둘째도 마찬가지. 기분이 좋을 리 없으니 엄마를 찾으며 운다. 

 난장판이 된 식탁을 치우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응가가 마렵다는 첫째를 화장실에 데려갔다가 우는 둘째를 안아서 달래고, 다시 좀 치우려니 첫째가 책을 읽어달라고 우는 식이었다. 중간중간 엄마가 왜 안오냐는 말에 일이 끝나야 온다고 대답한다. 아내는 6시가 넘었는데도 퇴근소식이 없다.

 

 아내와 둘이서 아이들을 돌볼때는 시간이 잘 안 간다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혼자서 둘을 돌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니 8시. 아내는 아직도 퇴근 소식이 없다. 다행히 첫째는 해열제가 잘 들어 열이 내려갔다. 

 

 아내는 9시가 넘어서야 집에왔다. 회사가 바빠 다들 밥도 안 먹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눈치 보며 자기가 제일 먼저 나왔다는데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복직한 첫날부터 9시 넘어서 집에 보내다니. 회사가 야속하다.

 

 그 뒤로 아이들은 다행히 잘 적응했다. 내가 몸이 힘들고 정신없을 뿐이었다. 다음날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지 못할까 걱정이었는데 열이 내려 어린이집에 보냈다. 첫째만 어린이집에 가면 둘째를 돌보는 건 쉬웠다. 낮잠을 두 번이나 자기에 그 시간에 쉴 수도 있었다. 하원 후 아내가 퇴근하기까지만 버티면 된다.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가 됐다. 아내가 오면 숨통이 틔였기 때문이다.   

 

 목요일엔 아내의 복직 환영 회식이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와주시기로 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수월했다. 하지만 불안한 점이 있었으니 나 혼자서 아이 둘을 재우는 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8시가 되어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하고 어머니를 배웅했다. 그리고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역시나 첫째가 엄마랑 잘 거라고 운다. 현관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겠다고 떼를 쓴다. 계속 달래고 달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첫째에게 소리쳤다.

 

 "너 자꾸 여기서 엄마 기다리겠다고 떼쓰면 엄마 오지말라고 할 거야!"

 

 그 말에 깜짝 놀란 첫째는 끅끅 울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얼마 뒤 진정이 됐는지 나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엄마를 기다린다. 요즘 개미는 왜 안 보이는지(겨울이니까), 개미는 왜 땅속에 집을 짓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결국 첫째가 잠들었다. 둘째는 피곤한지 진작에 잠든 지 오래다. 첫째랑 제대로 된 필로우톡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평소엔 아내가 첫째랑 이렇게 대화를 했는데 내가 주 양육자가 되니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뭔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다 잠든 뒤 집에 왔다. 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재운 것에 좋아하는 눈치다. 나도 내심 뿌듯했다. 프로 아빠가 되는 느낌이랄까.

 

 점점 혼자 하는 육아에 익숙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아내는 결국 일주일 내내 정시퇴근을 하지 못했다. 일에 적응해서 궤도에 오르면 칼퇴하겠다는데 그게 언제 일진 요원하다. 그때까진 계속 버티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좋아지겠지. 할 수 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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