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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육아일기

김 _ 육아일기 (D + 1042일, D + 417일)

by 토리오빠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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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를 하다 보면 듣는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아이들은 김이랑 미역국이 다 키운다는 말이다. 둘째를 돌 넘게 키운 경력직 아빠로서 저 말에 100% 동감한다. 특히 김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돌이 갓 지난 둘째는 저염식을 한다. 일부러 소금 간을 하는 일은 없고 해산물 등을 먹일 때 자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염분을 섭취하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김을 먹일 때도 소금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유아용 김을 사 먹인다. 내가 먹어보면 밍밍한 맛인데 둘째가 이걸 거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건 첫째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는 김만 보면 빨리 달라고 소리를 친다. 밥에 김을 싸 줘도 잘 먹고 김만 줘도 잘 먹는다. 아이를 키우다 요리할만한 시간도 없고 반찬거리도 애매할 때 맨밥에 김을 싸서 먹인다. 영양이 부족한 식단이어서 부모는 미안한 마음인데 둘째는 그 어떤 반찬보다 맛있게 먹는다. 보통 다른 반찬에 밥을 한 그릇 먹는다면 그냥 김에 싸주기만 했는데도 두세그릇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할때 기본적으로 햇반과 김을 상비해서 다닌다. 식당에 가서 둘째에게 집에서 만들어온 배추된장국에 밥을 말아 줬는데 먹지 않으면 결국 포기하고 김에 싸 먹이는 식이다. 예기치 않게 외출이 길어져 밥때를 놓치더라도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 김에 싸주면 그렇게 잘 먹는다.

 

 집에서도 김은 유용하게 쓰인다. 닭죽을 만들어줬는데 먹지 않으면 닭죽을 김에 싸서 먹이고, 스크램블 애그를 만들었는데 퉤 하고 뱉으면 또 김에 싸 먹인다. 가끔 너무 많이 먹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밥을 안 먹는 거보다는 나으니 자꾸 김에 손이 간다.

 

 만 세 살이 되어가는 첫째는 아직도 김을 잘 먹는다. 좀 컸기에 어른들이 먹는 김도 먹이곤 하는데 동생의 무염김도 잘 먹는다. 밥에 김을 싸고 있으면 서로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열심히 만든 반찬은 관심도 없고 말이다.

 

 오늘도 둘째에게 김에 밥을 싸줬다. 단백질이 부족할 것 같아 삶은 오징어와 밥을 김에 싸줬더니 오징어만 퉤 뱉어버리고 김과 밥만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열심히 만든 반찬이 소외되는 상황이  이젠 익숙해졌다.

 

 그래도 김에 고맙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비장에 무기가 있으니 든든한 느낌이랄까. 김 없는 육아는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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